로카르노*의 태양 이탈리아 말이 쓰이는 스위스의 남국 저 강 건너 야자수 그늘 짙은 거리 사람들 목소리가 시원한 매미울음처럼 구른다 지중해의 햇살에 부끄러움일랑 모두 거두어버릴 듯 머리채를 잡아 흔들며 목마름을 토하면서 마음을 달군 채 몸부림치는 영혼 묵은 것 새로 바꾸어주려는 듯 흐뜨러진 마음들을 한데 모아 잃어버린 추억들을 찾아 가슴에 적시면 언제나 태어나는 고향 파초의 꿈이 영근다. * Locarno. 스위스 남부 티치노 주의 도시. 나그네의 발걸음으로 2022.04.01
새로 만든 고향 외로운 마음들을 모아 새로 그리는 고향 땅과 하늘과 사람을 한 가닥에 엮어 수평선에 올려 놓고 마음 풀어 놓으면 까치 발걸음 세우지 않아도 새파란 하늘 넘어 보이는 둥지 어머니의 손. 나그네의 발걸음으로 2022.04.01
견디어 이겨내면 부르면 긍방 뛰쳐나올까 낯선 말투라도 알아듣고 뛰쳐나올까 좁다란 골목길 응달쪽으로 먼 전설처럼 뒤돌아 앉은 세상 구겨진 종이에 적힌 묵은 세월의 이야기 뒤엉킨 상념이라도 알아듣고 뛰쳐나올까 견디어 이겨내면 소나기 후 개울물처럼 새로운 탄력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나그네의 발걸음으로 2022.03.27
바젤에서 해뜨는 방향으로 산비탈 오솔길을 오르면 바둑알처럼 늘어선 검은 숲의 전설 드넓다 큰길 걷다가 해지는 방향에서 발길 멈추면 살갗을 스치는 환상의 게르마니아 라인강 무릎 알자스의 바람 불어오는 들길 너머 나라와 나라 사이 하늘에 그려지는 동그란 삶의 둥지. 나그네의 발걸음으로 2022.03.27
나그네의 발걸음으로 이파리를 다 잃고 울고 서 있는 가로수 멍든 하늘의 구름 따라 겨울바람 불면 오랜 기다림마저 흩날려 버릴까 머리 위를 지나는 초승달처럼 외로움이 두려워 휑한 거리를 맴돌던 헐벗은 나무의 추억 짓무른 이야기들 다 지워 없애버리고 지난 시간들 다듬어 바로 서면 진정한 가로수로 되살아 날까 혼자 걸어도 외롭지않을 나그네의 발걸음으로. 나그네의 발걸음으로 2022.03.27
바젤의 전차 천년 역사 사연많은 길목을 끊임없이 오가는 바젤의 전차 시청 광장에 들어서면 으레 사랑방을 찾는 남산골 샌님의 헛기침처럼 한두 번씩 경적을 울린다 대체 누가 그 몸에 순한 풀빛 옷을 입혔을까 장밋빛 시청건물 앞으로 발걸음 들여 놓을 즈음이면 빨간 도화지에 그어지는 초록 줄 파스텔 채색처럼 환한 미소를 짓는 광장 쪼개고 쪼개어도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시간의 도랑에서 잠시 접어둔 책갈피마냥 돌아누운 옛날들이 그대로 일어나 댕댕댕 종을 울린다. 나그네의 발걸음으로 2022.03.27
바젤 파스나하트* 부활절로 가는 사순의 길목 절제와 고통의 시간에 들어가기 전 마음껏 누리는 일탈의 시간 봄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이맘 때면 사람들은 귀신들까지 불러 모아 한 판 계획을 짠다 무거운 일상의 갑옷을 벗어내려면 귀신들의 마음을 달래고 얼러야 하는가 온 시내가 천방지축 모두가 방방 뛴다 기뻐서 뛰고 걱정돼서 뛰고 남이 뛰니까 뛰고 흩날리는 색종이마냥 모두의 마음들도 조각되어 뛴다 아니면 동물악대로 만나 머리보다 더 큰 머리를 달고 가슴보다 더 넓은 가슴을 달고 북을 치며 간다 피콜로를 불며 간다 어릿광대의 서툰 웃음 지으며 간다 라인강 어귀의 정령을 만나려면 가슴의 북소리, 영혼의 피리소리 모두 하나로 만들어 다리 위에서 한참 기다려야 한다지만 자기 마음 속을 환히 들여다 볼 수 있기 전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나그네의 발걸음으로 2022.03.27
바젤의 뮌스터 하늘의 메시지가 조갯살처럼 퍼지어 강림하는 라인 강둑 위 바젤의 뮌스터 자줏빛 성의를 걸치고 우뚝 선 역사의 소망 깊은 진홍빛 침묵으로 세월을 지키고 있다 탑 위 종소리 울리면 비둘기떼 날개치며 날아와 평화의 물결 번지게 하고 언덕 아래 광장에는 가슴 아픈 이별까지도 선한 만남의 기회로 바꾸어 주는 하늘의 은총 누리에 전하고 있다. 나그네의 발걸음으로 2022.03.27
간트리쉬* 봉 하늘 아래 첫 번째 동네 저 아래 마을 보다 하늘이 더 가깝다 발아래 구름 두르고 머리에 태양을 이고 선 알프스의 산자락 새들도 쉽게 갈 수 없는 요요한 세상 바람도 멈추고 소원이 바람처럼 부는 구름 위의 나라. * Gantrisch. 스위스 베르너 오버란트의 알프스 봉. 나그네의 발걸음으로 2022.03.26
무르텐 성 II 세월의 반전인가 깊고 깊은 적막 사이로 종소리가 울려 퍼지니 울리는 가락 속에 멈춰있는 세상을 되돌아 보고 싶어진다 성벽 돌틈 사이로 환히 펼쳐지는 벌판 안에서 많이 보이고 밖에서는 별로 보이지 않는 사대射臺의 지혜가 눈물겹게 애처로운 한낮 가슴에 날을 세우고 죽어간 사람들 긴긴 세월 썩지 않은 분노는 이름 모를 풀꽃이 되어 지나가는 나그네에게까지 뼈아픈 하소연을 쏟아낸다. 나그네의 발걸음으로 2022.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