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03 4

멜크*를 지나며

도나우강 춤추는 물결 위로황금 빛살 뿌리는화려한 바로크 궁전이하늘뜨락으로 거듭났다 높은 것이 내려놓는 겸손 보다더 높아지는 낮은 것이 있으랴움베르토 에코의 눈길 살아 있는수도원 종탑 아래엔위선을 거둬내며 성스러이 부르던장미의 이름이 휘날린다 동구밖 작은 집 문간에소롯이 피어난 장미넝쿨이어느새 기적처럼소리없이 지나가는내 가슴에 새겨져 있다. * Melk: 오스트리아 빈으로 가는 길목의 작은 도시. Umberto Eco(1932~2016)의소설 의 무대가 된 수도원이 있다.

바람 속 시간 2025.05.03

울름 대성당*

우람한 몸집한눈에 담을 수 없어꼭대기만 올려다보노라니층층 삼각첨탑 위로마침 구름이 몰려와소리없이 속삭이고 있네 둘은 가만히 그렇게속마음 다 쏟아 놓았거나아예 다 감추었거나이제는 새하얀 침묵뿐모든 걸 알고 있을도나우강도 완전 시치미네 구름은 하늘의 몸알리* 사람 눈길 닿기 힘든 이곳에이야기보따리 풀고성당은 그걸 받아 적으려고연필심 뾰족이 깎아저리도 높이 서 있는 거네. * 독일 Ulm에 있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고딕식 성당(161m)* 매우 친한 친구

바람 속 시간 2025.05.03

별리의 마당에서

하늘에 오르던연기 속 잿더미 한 줌땅 위에 내려지면한 생애의 문이 닫히는가멈춘 일상과 추억이 교차 되는별리의 마당에바람이 분다 남겨진 사람들은 조그만 대기실에 둘러앉아떠난 사람을 곁에 앉히고허무라는 이름을 덧대며돌아선 일상을 뒤적여보지만오지 않는 듯또다시 부는 바람 바람의 집은세상 둥지 속헤어짐과 만남이동그라미를 그리며언제나가고 또 온다.

바람 속 시간 2025.05.03

이 땅을 떠날 때

목숨 하나 부둥켜안고아등바등 한세상 살다가기 보다는거친 바람 속 초롱불 처럼안간힘으로라도 어둠을 밝혀주거나길 잃은 나그네에게희미한 휘파람 소리라도 불어주거나아니 그보다도설움 많은 사람의 가슴에조그만 사랑의 종소리라도 울려주다가이 땅을 떠날 수 없을까이다음 하늘나라 문턱에서 저기서 어떻게 살다가 왔느냐고혹시 그분께서 물으신다면대답 대신 그냥순한 웃음 하나 지을 수 없을까.

바람 속 시간 2025.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