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함이 자랑스럽다는 빨갛게 달아오르는 마음 파랗게 식어가는 눈길 모두 내게서 떼어내 버리니 아쉬움 전혀 없어라 수 많은 회의와 방황 속 내 안의 티끌 먼지 모두 거둬내니 청옥 맑은 하늘빛 두려움 전혀 없어라 굳이 내세울 필요가 없는 나를 굳이 맞세울 필요가 없는 너를 서로 화답하며 마주보게 하니 약함이 자랑스럽다는 바울의 속 깊은 고백이 더욱 가슴에 메아리치네. 동그라미 2022.03.21
이 길 편히 다닐 길이 있는데 왜 이 길을 가느냐 편히 살아갈 삶이 있는데 왜 이렇게 사느냐 그리 물으시면 할 말을 잃는다 마음의 새벽을 밝혀 나의 몸 가벼워 질 때 괴로움 보다 더 무거운 외로움으로도 행복해지는 이 길 어찌 아니 갈까. 동그라미 2022.03.21
단비 청아한 실로폰 소리처럼 통통통 유리창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 사하라 사막길이랴 아득한 먼짓길 너머 누군가 외친다 비에요, 비. 비가 내려요 단~비~ 돌아온 탕자를 맞는 아버지의 텅 빈 가슴처럼 산천초목이 고개를 쳐든다 이제 살 것 같구나. 동그라미 2022.03.21
시계탑 아래에서 녹두장군의 애끓는 민족사랑 종소리 되어 울려 퍼지는 시계탑 아래에서 베르테르의 편지 읽으며 키워 온 젊은 꿈 천리만향 방방곡곡에서 뽑히어 온 너와 나는 비로소 우리가 되어 두 세상, 두 문화를 아우르는 사명의 삶 시작하지 않았더냐 위에서 아래로 전해오는 것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 세우며 저 너른 곳을 향하여 외치는 함성 아, 고려대 독문과 50년 파랑새의 꿈이여, 영원하리라. 동그라미 2022.03.21
남극의 팽귄 턱시도 걸쳐 입고 뒤뚱뒤뚱 짧은 다리로 무대 위에 오른다 짧은 손 흔드니 저 너른 관중석으로 굽이치는 박수갈채 날지 못하는 새의 아픈 숙명일랑 젖은 물기 털어내듯 진저리로 날려버리고 하늘의 뜻으로 살리라 외칠 때마다 출렁이는 세상 아, 그대 땅 끝의 컨덕터 남극의 신사여. 동그라미 2022.03.21
정동의 향나무 소년으로 와서 청년으로 떠나기까지 서로 마주한 별빛 같은 시간 교실 창가에서 언제나 우리를 지켜주던 선한 눈동자 임진왜란 때 적장 하나가 말을 매어두려고 등허리에 박았다는 대못 하나가 전설처럼 자라나 높이 올라서 있는데 우리의 아픈 가슴 쓰다듬어 주던 부드러운 손길은 야위어 가고 결 곱던 머리칼도 시들었다 아, 500년 비바람 말없이 견디며 늙은 몸 지팡이에 기댄 채 제자리 지키는 지성의 눈빛 황혼녘 별무리 모일 제 우리 얼굴 비춰 줄 작은 등불 하나 마주할 수 있을까. . 동그라미 2022.03.21
정동의 회화나무 어둠과 침묵이 안개처럼 드리운 은둔의 땅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만방의 세력이 들이닥칠 때부터 정동의 역사 말없이 지켜 온 나무 하늘의 사명 축복처럼 내린 동산에 안개 걷히어 밝아오는 미래의 빛이요 사방에서 모여드는 새들의 둥지 되어 배움의 의지 한몸에 품은 깨우침의 나무 우람한 줄기는 너희 이상이요 넓게 휘인 가지는 너희 꿈이니 모두가 비상의 날개 다듬어 날아가도록 구름 같은 높은 기상 용솟음치게 하네. 동그라미 2022.03.21
정동의 소년들아 - 고교 졸업 50주년을 맞이하여 정동동산에 떠오른 신비로운 별무리를 보았는가 저 하늘 멀리서 날아 와 깊은 잠에 취해 있던 이 나라 이 민족에게 찬란한 새빛 펼치었나니 그 이름 배재학당이라 세상 깨우는 종소리 곳곳에서 듣고 달려 온 들꽃같은 정동의 소년들아 이 나라 최초의 배움터 이 나라 최초의 붉은 벽돌집 이 나라 최초의 운동장 이 나라 최초의 스팀난방 처음 부르던 찬송가 처음 드리던 기도 아, 우리는 시대를 선각하는 사명의 사람이 아니었더냐 欲爲大者 當爲人役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 우리의 배움과 가르침은 세상 살아가는 잔재주가 아니라 세상 구하는 진리였으니 갈고 닦은 큰 사람의 슬기 젊은 가슴에 깃발되어 펄럭이지 않았더냐 운동장 머리맡 회화나무와 교실 창가 향나무는 오늘도 하늘과 구름과 바람을 .. 동그라미 2022.03.21
반 고흐에게 벌판에 쏟아지는 황색 태양빛 저 햇살보다 더 뜨거운 사랑 아픈 기억으로 자라나 멍에인양 달린 상처 먼지처럼 훌훌 털어버릴 수 있을까 귀라도 잘라 버리면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마음 속 벼랑길로 뛰어내릴 수 있을까 벌거숭이 알몸으로 꿈을 꾸던 날개 없는 소원들 다시 접었다 펼 수 있을까. . 동그라미 2022.03.21
반 고흐 타는 태양빛 모아 불을 붙여도 태울 수 없는 영혼 거친 붓질로도 쓰러낼 수 없는 절망 속 가난 차라리 불길 짓눌러 가슴 위에 화인火印을 새기랴 서른일곱 해 마디마디 걸어 온 발길 하늘에서 빌려 온 어느 색깔로도 그릴 수 없는 텅 빈 외침 외톨이 굳은 얼굴은 길게 해바라기로 자라나 우리 곁에 와 있으니 조금 눈이 뜨이면 보이랴 뜨거운 마음의 빛과 그림자. 동그라미 2022.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