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두환의 시 160

마스크를 쓰면서

마스크를 쓰고 밖에 나왔어 황사에 미세먼지, 스모그로 자욱한 하늘 아래에선 꼭 쓰고 다녀야 한다지 이것마저 소용없을 때가 올지 모른다 하여 마스크 안에서 한숨을 쉬고 있는 우리 단비 내리던 하늘에선 산성비가 벌창이고 땅은 좀먹어들어 사막이 되어가고 해수면은 해마다 농구선수 키만큼 쑥쑥 솟아오른다는데 오존층이 무너지기 시작한 성층에는 세상 공기가 온난화로 들끓어 오른다니 벌써 불구덩 가마솥에선 신음소리가 새어나오네 땅 위에는 유해폐기물이 너절하고 점점 생물들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으니 이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날만 기다려야 하나 누구 탓인지 자꾸 물으면 뭐해 모두 잘 살아보겠노라고 시작한 일이라는데 원래 우리가 하늘의 일에 주제넘게 끼어든 탓이지 새 마스크를 갈아 끼우면서 생각해 보니 우리는 지금 살아..

조두환의 시 2022.03.06

수원 화성

팔달산 등에 지고 펼치는 호연지기 한내 젖줄 흐르는 고르고 너른 땅 예부터 물줄기 넉넉하고 인심 후하여 배산임수 명당터에 우뚝 세워졌으니 서울의 지킴이야, 삼남의 나들목이야 사통팔달 유유자약 빛나라 수원 화성이여 성곽의 튼실한 토목 부림과 고운 매무새 어린 짐승하나 얼씬 못할 철통요새라 누각에 올라 서서 사방을 둘러 보니 행궁너머 천만리길 거침없이 내달리네 정조대왕의 지극효심, 시대의 등불 실학정신 독야청청 영원무궁 빛나라 수원화성이여.

조두환의 시 2022.03.06

융건릉

부친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서슬 퍼런 원한에 붉은 꽃 멍들어 모두 보랏빛으로 물들었다던 양주 배봉산拜峰山 영우원永祐園의 유택을 떠나 경기 화성 팔달산 아늑한 화산花山의 마루턱에 망자의 원혼 달래어드릴 새집 지어 보살피네 탑처럼 우뚝 솟은 정조의 효심 가상하구나 부자일심 한 자리를 융건릉이라 하였으니 조상의 사랑과 후손의 우러름 역사의 물길 타고 오늘에 되살아나 내일을 기약하지 않더냐 절개 곧은 소나무들 흥겨워 소맷자락 흔들고 조선의 바람도 천만세세 선한 뜻 전해 주네 숲 속 자드락길 곳곳에 유유히 살아 숨쉬는 버드나무의 자태 더할 수 없이 싱그럽구나 오, 자랑스러운 충효의 요람 융건릉이여.

조두환의 시 2022.03.06

강원 고성 바닷가

긴 해안선 모래알 순간들이 쌓은 아득한 추억 백두대간 금강산 정기 산언덕과 해오름 바위에 출렁이는 바다물결 아름다운데 평화로운 저 골짜기에 시무룩 고개 숙인 나무들은 웬일인가 긴 한숨 서린 길 토끼눈 뜨고 더듬어 올라가니 동강난 산허리가 보이는네 둥지마을 산새들 마음대로 오가고 모래 위에 그은 선도 파도 한번 몰아치면 자취없이 사라지건만 사람들의 검질긴 마음은 어쩐 일인가.

조두환의 시 2022.03.06

탄호이저 송頌

너무나도 자유로운 영혼이어서 안개 자욱한 인생길 마다 않고 걷다가 금단의 자리에서 발을 헛딛고 말았네 바르트부르크 성의 음유시인 탄호이저여 경건과 명분에 절은 거짓 사랑의 노예들이 기회를 놓칠세라 허위와 위선의 누명을 씌워 당신의 티없는 가슴을 비웃고 있네 당신이 부르던 사랑의 노래는 저 하늘 위 반짝이는 저녁별이요, 사위지 않는 상그릴라 불빛이련만 당신의 조그만 실수에 부풀려진 모든 허물과 장막 무겁고 무거워라 하지만 진실은 영원한 한 송이 백합꽃 사랑의 화신 엘리자베스가 모든 걸 밝혀주니 진실은 허공에 걸린 저 먼 신기루가 아니라 온 누리에 향기 전하는 한 송이 장미 모든 사람이 할 말을 잃고 서서 메마른 지팡이에 새싹 돋아나는 기적을 보네 참사람은 스스로의 힘으로 더욱 빛나리니 그대가 부르는 사랑의..

조두환의 시 2022.03.06

신도시

허허벌판 너른 터에 집들이 들어선다 산비탈 양지녘엔 아파트가 솟고 가장자리로 훤히 트인 둘레길 누군가의 머릿속 그림 대로 삶의 터전이 만들어진다 갈참나무 일색이던 오솔길에는 소나무, 잣나무, 자작나무가 자리를 잡고 대추나무, 살구나무, 산수유나무도 초대된다 어느 산 어느 골짜기 어느 물가에서 뽑혀 왔는지 잘 생긴 돌들이 길목마다 줄지어 있는데 아직 물길 흔적마저 지우지 못한 그대로구나 바람이 없다 하면 들녁에서 잠자던 녀석 깨워 데리고 오고 물이 없다 하면 당장 마당 한 가운데 연못도 파놓는다 도대체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 어디 있는가 마냥 크게 외치고 싶은 신도시 한마당에서 지친 삶을 내려놓고 세월을 쌓아 가는 사람들 회색빛으로 물들어 갈 도시 언저리에서 과연 언제까지 푸르름을 지켜낼 수 있을까. ,

조두환의 시 2022.03.06

프리다 칼로*

마야 시대의 바람이 분다 색깔 덧입은 사막의 하늘이 눈물로 바뀌는 문턱너머 붓질 마를 새 없이 펼쳐지는 세상 운명이 검은 날개짓하며 유년의 놀이마당을 무너뜨리고 청소년마저 앗아간 단말마 고통 서른 두번 몸을 에이고 에이다가 마흔 일곱 고갯마루에서 멈춘 삶 차라리 축복이었다 말할 수 있을까 인생길 같이 가던 사람까지도 또 하나의 높은 장애물 되어 꽁지 부러진 잠자리처럼 고독의 수렁에서 허우적일 때 캔버스에 고이는 버건디 핏방울 예술은 그가 안고 잠들 수 있는 마지막 잠자리가 아니었을까. * Frida Kahlo(1907~1954): 멕시코 여성화가.소아마비, 교통사고, 32번의 수술 등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좌절함 없이 살았고, 강렬한 톤의 색채로 그 삶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조두환의 시 2022.03.05

금낭화

해넘이 풀꽃이라서 해묵은 기다림으로 언제라도 불러낼 수 있다지만 긴긴 인내의 시간들 가지마다 주렁주렁 소원 담아 꽃을 피워내는 어여쁜 비단 주머니 본홍 꽃 미소 사람 손에 곱게 키워지거나 돌바람에 억세게 자라나거나 세월의 향수 매달긴 마찬가지 모두 사랑의 얼굴로 피어나 하늘 향해 부르던 노랫소리 이 세상 하많은 일 남겨두고 훌쩍 떠나가 버린 우리 누님에게도 전해지려나.

조두환의 시 2022.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