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말 그냥 붙여진 이름은 아니려니 겹겹 꽃잎 안에 쌓인 소리 잃은 이야기들 낱말로 자라나 마음에 꽃을 피운다 밀려드는 근심 땅속에 묻고 끝내 잊을 수 없는 것들은 긴 줄기로 자라나 납죽한 미소로 앉아서 견디고 견디어 지켜낸 빽빽한 침묵 모두 서로 기대고 포개어지며 자기 설 곳을 찾는다 슬픔이 구름처럼 몰려 와도 웃음으로 키워져 얼굴에 가득 드리우리니 낱말들은 저마다 향기를 품고 꽃잎으로 피지 않으랴. 나그네의 발걸음으로 2022.03.24
촛불 인내라고 희생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오직 나를 바라며 나를 위하여 태우는 나의 불꽃 바람이 분다 심술기 장난같은 헛기침이 나를 흔든다 아무도 알 수 없는 나를 자꾸만 벗기니 더욱 뜨겁게 타오르는 나의 절규. 나그네의 발걸음으로 2022.03.24
어둠의 강 저편 꼬부리고 잠을 자고나니 가슴에 달려 있던 멍에들이 사라졌다 꿈길에 거친 바람 불고 망각이 햇살처럼 쏟아질 때 나를 어디에 벗어놓았던가 어둠의 강 저편 시간의 여물을 씹으며 사념의 숲을 걸을 때 자작나무 숲 사이에서 샘물을 마신다 목마름을 달랜다 일상의 낱말들이 민들레 꽃씨처럼 퍼진 들길을 걸으면서 답장 잃은 안부편지같이 쑥스러이 매달려 있는 꽃술을 보네 어둠 짙은 꿈속에서는 진정 밝다고 하는 것도 어두워지기 위한 것임을 알겠다. 나그네의 발걸음으로 2022.03.23
그리움 그리움에 불이 붙는다 자꾸만 나를 태운다 끝내 건널 수 없어 서성이며 맴도는 다리목 이방異邦의 빛나는 계절에 파란 손길 내미는 당신 향해 목마른 눈인사 던진다 황톳빛 슬픔이 타오른다 철 따라 세월 따라 도란도란 꽃 피는 고향 이야기 봄 쑥갓내, 여름 열무맛, 가을 대추꼴, 겨울 홍시빛 고랑 속을 비집고 나오는 비릿한 어머니의 젖 냄새. 나그네의 발걸음으로 2022.03.23
어디로 가는지 몰라도 간밤에 놀란 가슴 그 크기만큼 하늘을 덮고 있던 구름 실타래마냥 헝클어진 것 한 가닥 두 가닥 골라내며 탐색하는 꿈 거리를 뒹구는 이파리들처럼 삶의 뒤안길에서 서성이다가 안개 속 어디론가 사라진다 떠나며 남겨진 자리 가슴 아파도 먹구름 모두 걷히니 행복하구나. 나그네의 발걸음으로 2022.03.23
당신은 누구이신가? 헝클어진 혈맥처럼 가로로 세로로 모두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지만 결국 다시 한길에서 만나게 하는 당신은 누구이신가? 흐트러지는 걸 보면서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지만 가는 길 천리안에 담는 바람결 같은 당신은 누구이신가?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왔다가 가면서 한 가닥씩 나를 버려서 나를 성장하게 하는 당신은 누구이신가? 그대가 남기고 간 미소만큼 조용히 품에 안았다가 별이 되기까지 진정 기다릴 수 있게 하는 당신은 누구이신가? 나그네의 발걸음으로 2022.03.23
끊임없이 줄을 그으며 살아가면서 거미처럼 끊임없이 줄을 긋는다 우리라는 이름으로 너와 나를 가르고 너희라는 이름으로 나와 너의 울타리를 두른다 이 안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수많은 만남을 계획하고 수많은 헤어짐도 감행한다 그런 중에 마음 모진 자만이 의기양양 행복이라는 또 다른 줄을 긋는다 아, 그럴수록 한 복판에 우뚝 세워지는 나 고독은 빙빙 팽이처럼 돌고 총총 걸음으로 쓰러지면 알게 될까 우리가 그어놓는 줄이란 향수라는 동그라미뿐인 걸. 나그네의 발걸음으로 2022.03.23
생존 차창에 서린 입김 위에 '생존'이라 쓴다 독일어로 마음이 닿지않아 우리말로 바꾸어 보지만 왜 자꾸만 슬퍼지는 걸까 이곳에선 갈수록 늘어가는 낯선 것들 속에서 고립 대신 승리 또 승리 정해진 순서 대로 소리없이 외쳐보지만 가쁜 숨소리 뒤로 흔들리는 나 기쁨이나 아쉬움이나 한결같이 눈물로 끝나는 게 이상하다 이곳에선. 나그네의 발걸음으로 2022.03.22
가을노래 참고 참던 한숨이 해방되어 반란하는 시간 얽힌 실타래를 풀면 마지막에 보이는 또 하나의 삶 진정 외로울 때 부르기로 한 마지막 가을노래 붉게 물든 목숨 그 사랑 앞에서 보일까.. 나그네의 발걸음으로 2022.03.22
가을에 기대어 '사랑한다'는 말과 '살다'라는 말이 어우러진 '삶'이 고통의 벼랑에서 가을에 기대어 벼리는 가슴 시냇물 여울목 어릴 적 띄우던 종이배처럼 하늘에서 손사래 치며 내려오는 가을 잎새만큼 곱다. 나그네의 발걸음으로 2022.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