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었던 것 풀리고, 희끄무레한 초원 위에
문득 알뜰한 손길이 내려진다
작은 개울물들 도드라진 것 다듬어
부드러운 모습으로 바꿔주지만, 잘 보이지 않네
비어 있는 대지를 찾아 나서려 하니
땅 끝 저 멀리 트인 길들 그걸 보여 주려나
텅 빈 나무속에서 솟아오르는 그 모습
가뭇없이 그대 눈길에 비쳐오는가.
Vorfrühling(Rainer Maria Rilke)
Härte schwand. Auf einmal legt sich Schonung
An der Wiesen aufgedecktes Grau.
Kleine Wasser ändern die Betonung,
Zärtlichkeiten, ungenau.
Greifen nach der Erde aus dem Raum.
Wege gehen weit ins Land und zeigen’s
Unvermutet siehst du seines Steigens
Ausdruck in dem leeren Baum.
*
릴케가 세상을 떠나기 두해 전인 1924년 이른 봄, 스위스의 칸톤 발리스의 거칠고 준엄한 풍경을 접하고 노래한 자연(풍경) 서정시. 단순한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현상을 노래하기보다는 평생 천착해 온 ‘온전하게 구원된 세계 die geheilte Welt’에 대한 간구가 깃들어 있다. 이 세상에서 “보호받지 못함 die Ungeborgenheit”이나 “내쫓김 Ausgesetztsein”의 상태를 떨쳐버리고 자연과 다시 합일된 세계, 즉 모든 모순들이 지양된 ‘세계 내 공간’이 그것이다. 거기에서 시인은 해방된 인간으로서 말을 시작한다. 자연의 끊임없는 순환 속에서 봄소식이 전해지는 때, 시인은 자연의 섬세함을 읽고 새로운 공간을 찾는다. 그때 비로소 ‘길들 Wege“(6행)이 보인다. “텅 빈 나무속에서 솟아오르는 모습(표현)”이 보인다. “가뭇없이 Unvermutet”(7행)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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