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가 노래한다. 맑고 푸른 하늘엔
새하얀 솜털 구름들이 멈춰 선다
저녁이면 사람들은 말없이
옛 뜨락을 조심스레 지나간다
조상들의 대리석상은 잿빛으로 사위어가고
저 멀리 철새들의 행렬이 줄을 잇는다
목양신상 하나가 빛 잃은 눈으로
어둠속 깊이 미끄러져 간 그림자를 바라본다
붉게 물든 이파리가 나무에서 떨어져
맴돌다가 열린 창문으로 날아든다.
방안에서 달아오른 한 가닥 불빛이
희미하게 불안의 유령모습을 그린다
누군가 새하얀 옷을 입고 집안으로 들어온다
개 한 마리가 허물어진 복도로 뛰어든다
심부름 아가씨가 램프 불을 끈다
밤의 소나타 선율이 귓전을 울린다. (조두환 역)
Musik im Mirabell (Georg Trakl)
Ein Brunnen singt. Die Wolken stehn
Im klaren Blau, die weißen, zarten.
Bedächtig stille Menschen gehn
Am Abend durch den alten Garten.
Der Ahnen Marmor ist ergraut.
Ein Vogelzug streift in die Weiten.
Ein Faun mit toten Augen schaut
Nach Schatten, die ins Dunkel gleiten.
Das Laub fällt rot vom alten Baum
Und kreist herein durchs offne Fenster.
Ein Feuerschein glüht auf im Raum
Und malet trübe Angstgespenster.
Ein weißer Fremdling tritt ins Haus.
Ein Hund stürzt durch verfallene Gänge.
Die Magd löscht eine Lampe aus,
Das Ohr hört nachts Sonatenklänge.
*
4행 4연의 시. 한눈에 보기에도 균형 있는 짜임새를 느끼게 한다. 운율 상으로 십자운과 얌부스(약강격)의 리듬을 바탕으로 점진적인 움직임을 자아낸다. 그런 중에도 무언가 불안스런 사건에 대한 두려움이 다가오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렇다. 1차 세계대전의 고통을 벗어던질 수 없었던 시인의 절규가 가까이 느껴진다. 애절한 노랫가락은 색채감각으로 이어진다. 푸른빛, 흰빛, 잿빛, 붉은 빛, 어둠 등 색조의 변화는 트라클의 시에 있어서 이른 바 색채메타포의 진수를 이루고 있다. 시각적인 바탕에 정교하게 접합되는 청각적인 감성이 신선하다. 상징주의의 시적 에스프리가 짙게 번진다.
시인의 고향 잘츠부르크의 미바벨 공원. 한 구석 대리석 돌판 위에는 시 「미라벨의 음악」이 새겨져 있다. 멀리서도 눈에 확 띤다. 글자들 하나하나가 나를 기다리고나 있었던 것처럼 선명하게 내 눈에 들어온다. 한 구절 한 구절 읽어 내려간다. 내 목소리를 타고 어느새 시인이 지상으로 올라와 곁에 서 있는 것 같다.
1606년 이곳을 다스리던 볼프 디트리히 Wolf Dietrich 대주교가 사랑하는 여인 살로메 알트를 위해 지은 궁전이다. 원래의 이름은 알트나우라고 하는데, 마르쿠스 시티쿠스 대주교가 아름다운 전경이라는 뜻의 ‘미라벨’로 바꾸어 불렀다. 주위를 둘러보니 당연한 수식어라는 생각이 든다. 살로메 알트는 평민의 딸이었다. 디트리히 대주교는 주위의 절대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결혼하여 자녀 열다섯을 두고 행복한 생활을 누렸다. 하지만 애초부터 신분상 어울릴 수 없는 사랑이었기에 비극의 불씨는 가시지 않았다.
트라클은 무척이나 이 공원을 좋아했다. 기쁘거나 슬프거나 항상 이곳을 찾아와 거닐면서 정신적인 위로를 받았다. 무언가를 찾아 헤매면서 삶의 근원을 파악하려고 했다. 그에 맞춰 시심을 가다듬었다. 17세기 바로크 풍을 그대로 간직한 신화 속 주인공들을 새겨놓은 석상과 분수, 연못 등이 잘 다듬어져 있다. 그중에서도 시에도 나오는 목양신은 좀 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로마 신화의 하천과 임야의 신으로 사람과 양의 모습을 반씩 갖추고 있다. 후에 호색적인 산림정(精)으로 모습을 바꾸면서 자연과 인간의 감정교류를 대변하는 상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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