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시

파울 첼란의 「가만히」

조두환 2020. 10. 21. 14:35

가만있어! 네 가슴에 가시를 박는다

장미, 장미가

거울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피 흘리고 있으니!

진작부터 피 흘리고 있어서, 우린 우물쭈물 하다가

그만 훌쩍 마셔버리고 말았지

유리잔이 테이블에서 떨어져 깨어져버렸으니

우리보다 더 오래 어둠의 자락을 두른

밤이라 하지 않았던가

 

우린 각자 입으로 탐욕스레 마셨다

소태맛이었다

하지만 와인처럼 거품은 일었지 -

네 눈에 서린 빛을 쫓으니

혀는 웅얼웅얼 우리에게 단맛을 알리네...

(그렇게 웅얼웅얼, 줄곧 그러고 있네)

 

가만있어! 가시는 네 가슴 속 더 깊이 파고든다:

장미와 한 몸이 되었네.

 

Stille (Paul Celan)

 

Stille! Ich treibe den Dorn in dein Herz,

denn die Rose, die Rose

steht mit den Schatten im Spiegel, sie blutet!

Sie blutet schon, als wir mischten das Ja und das Nein,

als wirs schlürften,

Weil ein Glas, das vom Tisch sprang, erklirrte:

es lautete eine Nacht, die finsterte länger als wir.

 

Wir tranken mit gierigen Mündern:

es schmeckte wie Galle,

doch schäumt’ es wie Wein -

Ich folgte dem Strahl deiner Augen,

und die Zunge lallte uns Süße...

(So lallt sie, so lallt sie noch immer.)

 

Stille! Der Dorn dringt dir tiefer ins Herz:

er steht im Bund mit der Rose.

 

*

   거울에 비친 장미가 피를 흘린다. 애처로운 이미지가 2행에 반복된다. 강조하려는 의도가 돋보인다. 거울은 마치 액자처럼 피를 흘리던 시절에 대한 회상을 부각시킨다. 장미의 고통은 “우리”의 원죄와 연결된다. 분명히 마음을 정하기 전에 그것을 섞어서 마신다. 취한다. “우리”의 몰지각이 더 큰 고통을 안겨다 준다. 그때 평화롭게 우정 어린 축배를 들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잔이 테이블에서 떨어져 장미에게 또 다른 상처를 안겨준다. 그 잔이 내는 소리는 우리의 삶보다 더 긴 어두움을 예고하는 신호였다. 그 잔에 담긴 쓰디쓴 음료가 우리를 취하게 한다. 그럼에도 줄곧 횡설수설하는 혀에는 우리가 모르는, 또 영원히 알 수 없을 그런 지독한 슬픔이 담겨 있다.

   장미는 서정적 자아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장미와 그림자가 거울에 비친 것, 피를 흘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내가” 정적에 가시를 박고 있다고 생각된다. “나”는 가해자다. “정적”, 즉 장미에 대한 가해자이다. 또한 상한 장미의 거울에 “우리”의 죄과가 나타난다. 나의 모습이 비춰진다. 장미와 자아의 관계, 정적과 가슴에 가시를 박는 다는 것은 곧 지울 수 없는 기억을 침묵에다 남겨두는 것이 아닌가. 이런 의미에서 2연의 마지막 구절은 함축미가 절정을 이루는 시문학적 선언이다. “혀는 웅얼웅얼 우리에게 단맛을 알리네/(그렇게 웅얼웅얼, 줄곧 그러고 있네) 말이란 정적을 손상시키는 행위, 아니면 막혔다가 어처구니없이 쏟아지는 웅얼거림일 뿐, 진실의 본질을 옮겨주는 표현의 도구로는 부족하기 이를 데 없다. 가시와 장미, - 이런 언어의 합일은 장미의 시인 릴케에게서와 마찬가지로 ‘장미신비 rosamystica’의 함축적 상징이다.

   파울 첼란(1920~1970)은 루마니아 체르노비치에서 태어나 유태인으로 혹독한 나치시대를 겪고, 2차 대전이 끝나면서 부카레스트를 거쳐 빈에 정착, 초현실주의 문학에 몸을 던졌다. 시집으로는 『유골항아리에서 나온 모래 Der Sand aus den Urnen>(1948), <양귀비와 추억 Mohn und Gedächtnis』(1952), 『문지방에서 문지방으로 Von Schwelle zu Schwelle』(1955), 『언어격자창살 Sprachgitter』(1955), 『누구의 것도 아닌 장미 Die Niemandsrose』(1963>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