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듬이 소리 겨울밤 대청마루 끝에서 따닥따닥 들려오던 다듬이 소리 매운 바람 속 솔내음 퍼지는 때 밤하늘의 보름달같이 사뿐히 내려앉은 어머니의 얼굴 창가 빈 자리에 번지는 달 그림자 긴 세월 지나 오늘도 깊은 시름 속 무거운 한숨되어 내 마음을 두드리네. . 동그라미 2022.03.09
어머니 무릎 위에 누워 듣던 콧노래 눈을 감으면 아련히 가슴에 연못처럼 고이네 바람이 불어도 흔들릴 줄 모르던 옥돌같은 눈매 잔잔한 가슴에 샛별처럼 넘치네 노을 붉게 타는 저녁 하늘 날던 새들이 지저귐마저 그치는 때 소리 없이 번지던 그 미소 그립네. 동그라미 2022.03.09
단풍 앞에서 초록단장 싱싱하던 나무들이 양지 비탈길 위에 떨군 잎새들 파도처럼 황금빛 춤사위로 넘실대고 바람 잔잔한 나뭇가지 위에는 아직 다홍치마 선녀들의 상냥한 미소 누가 상실의 이름으로 가을을 노래하는가 저녁을 기다려 하루를 살지 않듯이 가을은 굳이 기다리지 않아도 오는 것 때론 바람이 결에 태워 보내 주고 삶의 마디마디 갈무리 해주니 기다리며 아쉬워하며 애태울 게 뭐람 살아온 날의 즐거움 뒤로 살아갈 날의 꿈이 반짝이노니 지나간 시간은 영영 돌아오지 않고 다가올 시간은 아직 오지 않았으니 저녁 노을빛 속 지금 이 시간이 경기 끝날 무렵 터진 골든골처럼 더 없이 귀한 인생의 축포가 아니랴 그렇기에 아침노을도 단풍빛이겠지. 동그라미 2022.03.09
기도하는 아침 길 잃은 아기노루가 덤불 숲속에서 눈 비비고 일어나 어미를 찾는 아침 새벽이슬에 젖은 한그루 야생화처럼 우리도 눈을 뜨고 당신을 찾습니다 거친 바람 속 넘나들던 지나간 숱한 고난들 모두 가슴에 담고도 무거운 줄 모르고 지내온 세월 이제야 하늘 향해 두 손 모아 비나니 모든 잘못, 후회와 미련 안개처럼 거두어 주소서 시들어가던 육신 푸른 마음으로 바로 세우니 눈망울에 스민 햇살 온 누리 골마다 언덕마다 번지면 모든 것 맡기고 새로 살게 하소서. 동그라미 2022.03.09
아침 숲 숲속 자드락길에 자욱한 여름 향 투명한 햇살 아래 보이지 않는 바람 되어 아침을 깨운다 지난 밤의 작은 노여움 바람결에 실려가 어느 이파리에 앉았다가 한 마리 새가 되어 숲길로 사라진다. 동그라미 2022.03.09
시간명상 하루를 살아도 한해를 살아도 시간을 모르는 양떼들의 눈망울 저 거울 같은 시간 밖의 세상을 보라 깊고 무거운 첼로의 빈 몸통에서 나오는 긴 한숨소리 시간을 가지고는 잴 수 없는 시간을 재고 있는 사람들아 살아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시간을 만들었을 거야 가까이 올 죽음이 두려워 시간을 만들었을 거야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 그래서 살면서 죽어가는 건지 몰라 동그라미 2022.03.08
민들레의 꿈 꽃마을 장터로 가는 좁다란 길 모퉁이에 좌판 깔고 조그려 앉은 노란 천사들 딱딱한 지하철 통로 가에 텃밭에서 꾸려온 작은 보따리 풀어 내놓고 고개 파묻은 하얀 머리 노란 얼굴 꼬부랑 할머니 숲속 나뭇잎 사이로 새어드는 햇빛을 따라 이슬비에 씻어 말린 깡마른 가슴 저녁놀에 날리며 바람 보다 가벼운 텅 빈 보따리 기다리고 기다리는 민들레의 꿈. 동그라미 2022.03.08
참세상 산 봉우리 높은 틈새로 들어서는 빛살 신비의 눈물 고인 호수에 나래를 편다 구름 속 아릿한 벌판에 눈 감고 마음 던지면 아스라이 보이는 당신 참 세상 동그라미 2022.03.08
산수유 갓 돋아난 병아리 벼슬처럼 보이는 듯 마는 듯 수줍던 산수유의 노란 미소 목련, 진달래, 나리 덩달아 뛰어나오게 하는 마술사의 손자락 되었네 성큼성큼 자라난 연둣빛 눈망울 산길, 들길, 누리마당 어디든 내 쉴 곳 예 있노라 외치며 수선화, 원추리, 할미꽃 하늘나라 꽃 대궐 잔치 벌이는 봄의 여왕벌 되었네. 동그라미 2022.03.08
영춘화 한 겨울 눈 감고 애를 태우던 노오란 기다림 해님 오시는 길목에서 꽃망울 벙그는 봄맞이 꿈 몸마디라도 땅에 닿으면 이내 뿌리 내리는 나팔주둥이 눈물 많은 가슴 꽃 갠지스 강 죽음의 골짜기에서 떠내려간 추억들까지 하늘로 길어 올리는 아, 재스민 보다 더 진하고 고운 영생의 향기여. 동그라미 2022.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