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
요젭 폰 아이헨도르프
어둠이 나래를 펼치려네
나무들은 무서워 몸을 떨고
구름들도 무거운 꿈처럼 지나간다 -
이 무서움은 무엇일까
그대는 무척이나 노루를 좋아했지
혼자 풀을 뜯게 놔두지는 말라
사냥꾼이 지나가며 부는 나팔소리
이리저리 떠도는 목소리 들린다
그대에게 이 세상에 한 친구가 있다면
이 시간에는 그를 믿지 말라
다정함이란 눈과 입으로 뿐
그는 평화를 가장하여 전쟁을 생각하고 있지
오늘 지쳐 무너져가는 건
내일 새로 솟아나리라
많은 것이 밤이면 없어져버리겠지
조심하라, 깨어서 경계하라.
Zwielicht
Josef von Eichendorff
Dämmerung will die Flügel spreiten,
Schaurig rühren sich die Bäume,
Wolken ziehen wie schwere Träume -
Was will dieses Graun bedeuten?
Hast ein Reh du lieb vor andern,
Laß es nicht alleine grasen,
Jäger ziehen im Wald und blasen,
Stimmen hin und wieder wandern.
Hast du einen Freund hienieden,
Trau ihm nicht zu dieser Stunde,
Freundlich wohl mit Aug’ und Munde,
Sinnt er Krieg im tück’schen Frieden.
Was heut müde gehet unter,
Hebt sich morgen neugeboren,
Manches bleibt in Nacht verloren -
Hüte dich, bleibt wach und munter!
* 해설
독일의 낭만주의 시인 요셉 폰 아이헨도르프 Josef von Eichendorff (1788~1857). 자연과 합일함으로서 얻는 차안과 피안 전일의 세계에 대한 만족감을 기독교적 가치관에 입각, 소박하게 노래부른다.
어스레해 가는 숲 속 저녁풍경에 까닭모를 불안이 느껴진다. 첫 연의 세 시행에서 이미 엄습한 불안이 하나의 질문으로 나타나면서 생각선(–)을 통해 여운을 남긴다. 낭만주의 시인으로서 아이헨도르프가 즐겨 쓰는 시의 주제는 그의 다른 시「달밤」과 거의 유사한 분위기이지만, 시간적인 배경은 완전한 밤이 아니라 낮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과도기 황혼이다. 저녁노을에 잠긴 세상은 불투명하다. 모든 것을 희미하게 하는 그것이 더욱 진한 불안을 자아낸다. 거기에 숲속의 뿌연 빛이 상응되어 나타났다가 다시 숲 속으로 가물가물 사라져간다. 그리고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사람 목소리와 사냥꾼의 나팔소리.......
시는 각 4연 4행시로 질서 있는 배열을 기하면서 어떤 균형미를 전제로 하고 있다.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의 변동을 차근차근 제시하고 있다. 자연이란 낭만주의 시의 디딤돌이 아니던가. 그에 걸맞게 시 전체에 포옹운이 구사되고 있다. 훈훈한 정감을 자아내고 있다. 십자운으로 강조될 각 연의 독자성이 이로써 더욱 강화될 뿐만 아니라, 전체 분위기도 느슨히 풀어주기도 한다.
자연은 초자연적인 것을 암시하기보다는 우리 삶의 둥지를 깨닫게 한다. 그것이 어두움이란 이미지이다. 그것은 “집으로 nach Haus”가 아니라, 미로 속으로 인도한다. 하늘은 그 안에 있는 구름을 통해 세속적인 악몽을 암시한다. 불안을 떨치지 못하는 인간은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물론, 친구의 충성스러움까지도 불신한다. 두려움에 떠는 나무의 움직임, 그 어떤 나직한 살랑거림일지라도 영혼을 움직이게 하는 대신 놀라움에 떨게 한다.
“오늘 지쳐 무너져가는 것/내일 다시 솟아나리라”라는 구절을 통하여 밤은 세상의 악함을 일시적으로 잠재워주지만, 해가 뜨면 다시 되살아나리라는 불안한 심사를 부각시킨다. 앞서 위협적으로 설정된 “많은 것이 밤이면 없어져버리겠지 Manches bleibt in Nacht verloren”라 하여 그런 두려움을 잠재워주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일시적이다. 좀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도록 시간적 여유를 허용하는 생각선이 설정되어 있다. 하지만 “조심하라 Hüte dich”라는 명령법으로 강한 경고의 의미를 자아낸다. 우리는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 그렇다고 안전하다고는 볼 수 없으리라는 하나의 촉구인 것이다. 그러므로 “깨어서 정신 차리고 wach und munter” 있어야 한다.
밤은 편안한 휴식의 시간이기도 하지만, 쉽게 파악할 수 없는 미지와 신비의 세계이다. 어떤 한계를 확연히 긋지 못하는 모호한 시간. 밤을 두려움, 아니 경외의 무한한 세계로 인식한 낭만주의의 세계가 시인의 가슴을 통해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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