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시

귄터 그라스의 <나무딸기덩쿨>

조두환 2020. 3. 17. 15:12

하 많은 생각들 뒤의 숲

그 생각들에 맺힌 빗방울

그것들마저 노랗게 물들이는 가을 -

 

아, 나무딸기 덩굴이 말을 하네

늪 속에 빠진 빨간 딸기가

네 귀에 속삭이네

 

네 귀론 알아듣지 못하니

내 입으론 말 한마디 떼지 못하니

딸기가 떨어지는 걸 어찌 말로 할 수 있으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생각들 사이에서 손을 맞잡고

빽빽한 숲 속에서 흔적마저 사라지네

달님이 눈을 뜨네

노랗게 그리고 영원히.

 

Himbeerranken

 

Der Wald hinter den Gedanken,

die Regentropfen an ihnen

und der Herbst, der sie vergilben läßt -

 

ach, Himbeerranken aussprechen,

dir Beeren ins Ohr flüstern,

die roten, die ins Moos fielen.

 

Dein Ohr versteht sie nicht,

mein Mund spricht sie nicht aus,

Worte halten ihren Verfall nicht auf.

 

Hand in Hand zwischen undenkbaren Gedanken.

Im Dickicht verliert sich die Spur.

Der Mond schlägt sein Auge auf,

gelb und für immer.

 

 

 

  엄연히 존재하면서도 우리의 삶이나 언어의 한계성으로 말미암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는 것을 조용히 노래해 보려고 하는 하는 시인의 의지가 돋보인다. 전후 1세대 작가 귄터 아이히 Günter Eich(1907-1972)1955년에 펴낸 시집 <비가 전하는 소식 Botschaften des Regens>의 마지막에 수록된 이 작품은 자연서정시의 형태를 띠고 있으면서 철학적 기조의 음울한 생명명상의 시다.


  1948년 시집 <외딴 농가들 Abgelegene Gehöfte>에서 나치, 학살, 범죄, 전쟁, 포로생활, 핵실험, 한국전쟁 등 자연을 진솔한 어휘로 표현, 시적 출발점을 삼았다. 뒤이어 물질이기주의 등 당면한 사회현실문제들과 연결시키면서 독일 시문학의 전통을 계승, 순수와 참여 사이를 오가는 작가적 행보를 걸었다. 일찍이 대학에서 법학, 동양학(중문학)을 공부하여 풍부한 문학적 바탕을 이룩한 그는 <47그룹>을 형성, 피폐한 독일문단의 재건에 힘써 그 공로를 인정받아 제 1회 수상자가 되었다. 특히 방송극이라는 새로운 장르에도 천착하는 한편, 60년 이후에는 간결한 형태의 형이상학 시 Metagedicht’에 몰두하였다


  시인은 삶과 죽음이 일치하는 세계를 그린다. 까치, 까마귀, 어치, 비둘기 등 그런 세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새들을 절대적 존재로 등장시킨다. 그리고 그들의 기호(암호)를 풀어내려는 미학적 본질을 찾기 위해 몸부림친다. 혀끝에서만 맴돌 뿐, 말하여 질 수 없는 오직 하나뿐인 말. 인간에게 주어진 언어로는 불가능하기에 무엇인가로 대체할 수밖에 없다고 믿는 그에게 그것은 하나의 고통으로서 번역의 이미지로 압축, 표현된다. ‘다른 언어로 옮김다른 영역으로 넘어감의 두 가지 형이상학적-물리적 현상 사이에서 원전의 세계, 즉 현실의 피안, 영원의 시공, 절대존재의 영역을 향하는 과정을 추구한다.


  1연에서는 생각과 사물의 분리, ‘’, ‘빗방울’, ‘가을등의 현실세계와 자연영역의 경계성 차안과 피안- 이 설정된다. 딸기의 떨어짐과 가을의 우수, 연인의 사랑 등이 우울, 체념, 명상, 죽음, 허무 등 인생무상의 과정을 거쳐 인간구원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리하여 2연에서는 덩굴이 말하고, 딸기가 속삭이는 세계, 즉 언어와 사물이 분리되지 않는 총체적인 전일의 세계에 들어서면서도 시적 자아는 사물이 말하는 영역의 언어를 이해하지도 말하지도 못한다. 3연에서는 너와 내가 가지고 있는 로서는 떨어짐을 감당할 수 없는 한계상황이 절박하게 토로된다. 그리하여 시는 언어가 지칭하는 대상과 합일되는 상태에 도달할 때 비로소 창조의 가능성을 연다는 종결메시지의 4연이 나온다.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생각들 사이의 마적 경지에서 손을 맞잡고 숲속으로 사라짐으로써 시적 자아가 발견되는 그런 영역이다. 또한 달이 사람처럼 노란 눈을 뜨게 되는 인간-세계 일체화가 이룩되면서 영원의 시공, 절대적 존재가 인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