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부 선비의 기품일까
곧은 기와지붕의 맵시
북촌 비탈길 타고 내려오면
안국동 네거리
활기찬 젊음이 열어 주던
아침거리엔
휑한 바람 미련처럼 스치고
만남도 헤어짐도 희미해지니
기다림도 사라졌구나
창덕궁과 경복궁을 날개 삼아
들어선 운현궁 언저리에는
당당하던 세도가의 목소리가
아직도 솔잎에 스민 탓일까
새들도 숨을 죽이고 있는데
행랑채 그 너머로
알사탕처럼 이어지는
낙원동 종로통 떡집 골목길에서
비로소 사람들 소리가 들린다
길을 건너 세종로 쪽으로 가면
알몸으로 떨고 있는 가로수들
낯익은 건물들은 오간 데 없고
새 빌딩들이 줄지어 선 거리
제 자리를 찾은 광화문만이
그나마 의젓한 미소를 지고 있지만
어처구니 버선코 추녀밑으로
역사에 대한 속죄인 양
옛 추억들이 한숨을 내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