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단 바라보다가
잠시 눈을 감으면
머릿속에 잠기는
희미한 옛 그림자
그리면 그리는 대로
동네 어귀 골목길과
잘려 나간 금천교 시장이
드문드문 되살아 나고
활시위처럼 굽은 황학정 바우길
걸어 오르면
고향 저버린 죄스러움 때문일까
밟히는 돌조각들이 반란하는 소리
요란하다
고향은 꿈속에서
훌쩍 큰 아이처럼
하얗게 변해 있고
어릴 적 이야기들은
건사 못할 옛물건처럼
뽀얀 먼지 쓰고 누워 있는데
옛사람들의 목소리도
저 먼 시간의 벽을 넘어
아스팔트 위에 모여든다
옥인동 가는 길에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수많은 어제와 오늘 사이에서
누에처럼 무심하게
시간의 올을 뽑아내는 일
아, 내일이 자꾸만 밀려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