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라미

눈속의 잘츠부르크

조두환 2022. 3. 19. 17:16

온 누리가 새하얗다

이곳을 처음 찾았던 삼십년 전

그 해 겨울도 이랬으니

이맘때면 소금성에 사는 하얀 천사들이

얼룩진 세상을 닦아주려고 

으레 날아오는 건지 몰라

그리고 땅위의 사람들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소리빛들로

마음을 가락으로 묶어

다시 하늘로 올려 보내는 걸테고

 

날이 밝으면 바로 이곳을 떠날 생각이었지만

성채, 성당, 첨탑, 종루, 모차르트 

모두가 나서서 말리는듯 하니 어찌할손가 

눈발은 점점 더 무더기로 쏟아진다

거리의 악사들이 뽑아내는 바이올린 선율이

잘자흐 강물 위로 애잔하게 흐르고

무지개다리 난간 위는

사랑의 언약을 실은 수많은 자물쇠통들이

침묵처럼 더욱 무거워 보이는 밤

 

눈길 구석을 맴도는 검은 바람을 보니

이 하얀 눈을 검다고 노래부르던

트라클*의 한숨소리가 가슴을 무너뜨리는데

그의 생가 방향을 가리키는 나무손가락마저

고개를 떨구고 있는 광장 한복판

소금성 이 새하얀 눈길 위에서

나는 이제 더 어디로 가야할까.

 

 

* Georg Trakl(1887~1914). 잘츠부르크 태생의 표현주의 시인.

원초적 순수세계를 찾아 고독과 우울 속에서 방황하다가

전쟁터에서 자살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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