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갈까 망설일 필요가 없다
언덕 바위 위 교회당
저녁햇살이 좀처럼 기울지 않는
산비탈을 따라가면 된다
마음이 머물다 바람으로 부는 곳
더 이상 선택이 없는 그 자리에
영원의 이름으로 누우신 당신이여
수염처럼 자란 풀밭 위
비석 모퉁이에 걸린 얼굴을 바라보면
막혔던 응어리가 풀리고
금방 시가 쏟아질 것만 같아라
묶이고 매이는 것이 싫어서일까
세상에 머물게 해준 고마움 때문일까
핏빛 보다 짙게 남긴 삶의 발자국
그 이름에 비하면
잠자리가 초라하기 이를 데 없으니
영원히 손님으로 살다간
세상의 나그네여
당신은 왜 그처럼 수줍게 사셨습니까?
여린 손가락 가시에 찔려
죽음을 바친 죽음으로
삶을 사랑하던 당신이여
비석 옆 십자가 밑에
"순수한 모순으로"
잠들며 피어난 장미 한 송이
참을 수 있는 아픔 이상
아프게 서린 입김으로
"누구의 잠도 아닌 즐거움"을
지금도 노래 부를 수 있을까.
* 스위스 발리스의 한적한 마을 라론 교회당 뜰에 있다. 미리 유언 삼아 써둔
짤막한 3행시 "오, 장미, 순수한 모순이여/ 누구의 잠도 아닌/ 즐거움이여"가
새겨진 비명 아래 시인은 영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