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시

헤르만 헤세의 <안개 속에서>

조두환 2020. 9. 17. 21:13

안개 속을 거니노라니 참 이상도 하다

덤불과 돌은 모두 외롭고

나무들은 서로를 보지 못 한다

모두가 다 혼자다

 

내 인생 한창이었을 때엔

온 세상 친구로 가득 했지만

안개 자욱한 지금은

그 누구도 보이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가만히

모든 것에서 자기를 떼어 놓는

어둠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은

정말 현명하다 할 수가 없다

 

안개 속을 거니노라니 참 이상도 하다

산다는 건 고독한 것

서로가 서로를 알지 못한다

모두가 다 혼자다.

 

Im Nebel (Hermann Hesse)

 

Seltsam, im Nebel zu wandern!

Einsam ist jeder Busch und Stein,

Kein Baum sieht den andern,

Jeder ist allein.

 

Voll von Freunden war mir die Welt,

Als noch mein Leben licht war;

Nun, da der Nebel fällt,

Ist keiner mehr sichtbar.

 

Wahrlich, keiner ist weise

Der nicht das Dunkel kennt,

Das unentrinnbar und leise

Von allen ihn trennt.

 

Seltsam im Nebel zu wandern!

Leben ist Einsamsein.

Kein Mensch kennt den andern,

Jeder ist allein.

 

 

*

   헤르만 헤세는 『수레바퀴 밑에서』, 『데미안』, 『싯다르타』, 『유리알 유희』등의 작품들로 많은 감동을 안겨준  작가이다. 1946년 노벨 문학상 수상의 영예도 안은 그는 고요하고 평온한 명상의 테두리 속에서  ‘고독’이란 말을 ‘구름’,  ‘물’,  ‘바람’ 같은 어휘들과 함께 자리하게 한다. 모든 게 있다가 어디론가 사라지는 우리 인생의 흐름과 같다.

   시인은 1877년 독일 남부의 작은 도시 칼프에서 태어나 1962년 스위스의 몬타뇰라에서 영면할 때까지 수많은 곳을 전전했다. 마울브론 수도원 신학교에서 도망쳐 나와, 정신불안증에 시달려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런 중에 화가인 친구와 함께 떠난 인도 여행은 그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의미 있는 체험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는 동양인들에게서 깊은 영적인 유대감을 느끼면서 작품에 그대로 반영시켰다.

   시 <안개 속에서>는 외롭고 쓸쓸한 마음, 따로 떨어져 있는 사물, 그 모든 현존재의 모습을 눈앞에 제시한다. 그 속에 있는 우리 개개인의 존재를 돌아보게 한다. 안개는 어둠처럼 사람과 사람, 물(物)과 물(物)의 관계를 차단한다. 그러나 그것은 존재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 있는 것이라는 인식을 전제로 한다. 덤불은 덤불로, 돌은 돌로, 안새 속을 거니는 자는 혼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안개는 죽음처럼 몰려온다. 하지만 그것은 피로와 슬픔 대신 이상하게도 안식 같은 것을 안겨준다. 화려한 겉치레는 어느덧 사라지고, 인간 본연의 어떤 것에 이르게 된다. 참 고독으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