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기행

독일 마인츠의 추억

조두환 2020. 4. 13. 11:47



독일 마인츠의 추억

 

                                                                            솔뫼 조두환

 

  한겨울 찬바람이 불고 있었다. 프랑크푸르트로 돌아가는 길에 마인츠에 들른 것은 1월 하순 어느 날 저녁 4시경. 해가 일찍 저녁 어스름해질 때였다. 비교적 친숙한 이 도시에 일말의 추억을 보태고 싶었다. 독일의 중서부 비스바덴과 맞붙은 라인 강 왼쪽, 마인 강 어구에 있는 라인란트팔츠 주의 주도이다. 고풍어린 역 건물을 빠져나오니 곧 활기찬 현대감각의 도시가 눈앞에 다가선다. 굽은 가로와 빌딩 사이로 휘몰아치는 겨울바람. 그래도 왠지 살짝 봄기운이 스친다. 겨울이 오면 봄은 멀지 않으리라는 셸리의 시편 정도 기억해 둘까?

  이상하게도 이 도시와는 인연이 깊다. 1976년 여름, 유학시절 친구를 찾아 처음 이곳에 와 본 이후, 프랑크푸르트 공항이 가까운 탓에 오다가다 족히 너 댓 번은 된다. 마지막으로 다녀 간 것이 2003년 늦가을, 낮은 등급의 H호텔을 인터넷으로 예약했는데 제 값 다 낸 것에 비한다면 시설은 19세기 소설에나 나올 법한 분위기. 삐걱거리는 마루에 화장실은 공용, 1층은 술집이어서 밤새 얼마나 시끄러웠던지. 라인강 가까이 있는 곳이어서 그래도 여행객으로서는 또 다른 추억거리가 된다. 큰 배를 띠우고 있는 나루풍경이 낭만의 꿈을 마냥 부풀게 하고.......

  유명한 마인츠 돔 앞에 선 것만 해도 몇 차례인가. 이곳의 트레이드마크인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Johannes Gutenberg(1400-1468) 동상 앞에는 몇 번이나 서게 되는 건가. 숫자를 굳이 헤아릴 필요도 없이 오면 올수록 새로운 정감이 드는 매력이 있는 곳. 라인 강을 허리에 두르고 있는 도시의 기품이 가슴에 꽉 들어찬다. 유장한 역사를 품고 사는 교회당 입구, 여전히 진솔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조형물들, 그리고 그쪽으로 통하는 길목의 실러 광장에 서니 옛 고향이라도 찾아온 듯 가슴이 뭉클해진다.

  켈트족의 집단거주지였던 이곳이 기원 전 로마시대의 군사 야영지로 자리 잡기 시작하여, '마인츠 황금지대'로 불리던 중세기를 거쳐 라인 지방 도시연맹의 중심지, 독일제국의 요새도시로서 위치를 공고히 하기 까지 잦은 외세의 침탈에 시달렸고, 근자에는 두 차례 세계대전을 통하여 극심한 피해를 보았으면서도 보란 듯이 제 모습을 찾았다. 인근 프랑크푸르트와 만하임의 그늘에 가리어 경제적으로는 크게 발전하지 못했지만, 군사요충지로서, 라인 강의 포도주 교역 중심지로서 우뚝 서게 되었다.

  마인츠는 독일의 도시 중에서 가장 로마문화유적들이 많은 곳이다. 흔히 독일문화라고 하면 게르만 문화전통을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기독교문화 중심에다가 로마문화가 큰 바탕을 이루고 있다. 그러니만큼 상 이그나티우스 교회, 상 슈테펜 교회, 상 페터 교회, 르네상스 시대의 선제후 궁전 등 도시가 간직하고 있는 찬란한 역사의 흐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고, 유럽 내에서 손꼽히는 전통의 대학은 도시의 자존심을 굳건히 세워주고 있다. 이런 마인츠를 빛내고 있는 것은 바로 신의 집이라고 하는 마르틴 돔 성당. 도시에 들어서면 일단 이곳을 향하지 않아도 자연히 발걸음이 닿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975~1009년에 처음 세워져 여러 차례 개축, 1239년에 완공되었는데 원래의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에 그 후 여러 가지 요소들이 추가된 마인츠의 정신적 지주다. 둥근 천장의 건축물 아래에 들어서면 각가지 감정의 굴곡 속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신의 은총이 약속으로 내려지고 곧 선량한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축복을 체험하게 된다. 문득 이곳에 왔을 때 돔이 위치한 바로 북위 50도선에 발을 걸치고 감격스러워 하던 일이 생각난다.

  이곳은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태어난 도시. 구텐베르크 동상은 한 치의 변화도 없이 옛 모습 그대로다. 유럽의 근대를 찍어 낸 문화혁명가로 그를 높이 기리는 이곳 사람들이 인류의 빅뱅이었노라고 자랑스레 이야기하는 1440년경 활자 인쇄기술의 발명. 구전문화시대를 거쳐 인류가 활자인간으로 거듭나게 되면서 인류의 역사를 더욱 기름지게 했다. 더욱이 지식계층만이 독점하던 폐쇄적 정보패러다임을 해체하고 소통의 민주화를 이룩한 것, 그것이 또한 루터의 성서번역과 그 밖의 문화적 업적을 극대화시켰다는 사실은 이곳 마인츠 시민들이 두고두고 자랑해도 넘침이 없으리라. 하지만 이 인쇄술을 이용하여 맨 처음 찍어냈던 것이 면죄부였다고 하니 이런 역사의 아이러니를 어떻게 이해할까. 어쨌거나 구텐베르크가 화제로 떠오를 때마다 200년이나 앞섰다는 우리의 선진 고려금속활자가 언급되니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다.

  오늘은 토요일. 한적한 주말분위기가 갑자기 활기로 넘쳐난다. 바로 파스트나하트 Fastnacht’라 불리는 카니발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 도시에 들어설 때 느껴지는 묘한 기분이 바로 이거였구나. 그리스도의 죽음과 고난을 기리는 사순절 전야까지 이어지는 이 절기의 축제. 광장에는 희희낙락하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행사에 참여한 대열 옆을 지나가노라면 외국인인 나에게 유난히 장난을 걸어오는 사람이 많다. 그들의 선의가 즐거웠다.

  마인츠 카니발은 독일 내의 다른 지역과 비교해서 유별나다. 규모가 크고 소란스럽다. 새해 들어 카니발 행진그룹이 시내 중심가를 누비는 것으로 라인 강과 마인 강의 합류지점에 위치한 역사적인 도시 마인츠의 카니발은 시작된다. 행사는 절정에 이를수록 광란의 분위기로 치닫는다. 외세의 다툼과 피해를 되새기거나 과거의 정치적 불의를 풍자하는 데 초점을 맞춘 시민의식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카니발 복장들도 프랑스와 프러시아 군대의 옛 유니폼을 그대로 본뜨거나 희화한 것들이 많다. 거리는 흥분의 도가니. 간간이 고함소리가 들리고, 악기와 웃음소리가 굴러온다. 사람들의 발걸음도 자못 춤을 추는 듯하다.

  구경꺼리가 많아도 옷 속까지 파고드는 한기를 견디기 어려웠다. 수프 같은 간단한 먹거리를 파는 레스토랑에 들어섰다. 만원이었다. 다행히 한쪽의 자리를 발견하고 순서를 기다렸다. 우리 쪽으론 전혀 눈길을 주지 않는 것 같아 종업원에게 손짓을 했다. 곧 오겠다는 신호를 보냈지만 한참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기차시간도 있고 해서 그냥 나오고 말았다. 쇼윈도에는 축제행렬들을 묘사한 과자들이 앙증스러운 모습으로 전시되고 있었다. 전 시민의 축제는 소비경기의 큰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버스를 탔다. 역시 흥에 겨워하는 시민들의 감정상태가 차안에도 넘실댄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하지 않는가. 역에 다다랐다. 기차가 오려면 30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 역구내 화장실을 쓰려면 독일에서는 돈푼을 내야 한다. 마침 잔돈도 없었고, 왠지 오기가 발동하여 참기로 했다. 기차에 올라타고서야 시원히 해소했다. 화장실이 해우소(解憂所)라 불리는 법가의 전통이 실감난다.

  달리는 열차 안에서 한 젊은 여인이 전화를 건다. 적어도 30분 넘게 노닥거린다. 주변에 앉은 사람들의 표정이 이지러진다. 아름다운 마인츠의 추억 뒷자락에서 그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라도 만나면 당장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은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