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헨 가도
솔뫼 조 두 환
1.
오랫동안 주인의 사랑을 받던 당나귀가 세월이 지나자 쓸모없게 되었다. 곧 죽여 버리려는 주인의 속내를 알아차린 당나귀는 거기서 뛰쳐나와 브레멘이라고 하는 도시로 가기로 했다. 그곳에 가면 거리의 음악사 노릇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길을 가던 중 같은 처지의 사냥개를 만났다. 둘은 일행이 되었다. 그리고 또 한참을 가는데 고양이 한마리가 길가에 웅크리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 쥐도 제대로 못 잡고 난로 가에서 졸고만 있으니 주인이 자기를 강물에 처넣으려고 한다고 울먹이는 것이었다. 곧 한동아리가 되었다. 또 어느 큰 집 앞을 지나려니까 수탉이 대문 꼭대기에서 뼈 속까지 저려 오는 목소리로 울고 있었다. 내일 잔치를 위해 자기는 죽을 목숨이라는 것. 그래서 모두가 브레멘으로 가자고 이끌었다.
밤이 늦어 어딘가에서 묵고 가야만 했다. 높은 나무 가지에 올라 간 수탉이 사방을 둘러보더니 멀리 등불이 보였다. 일행은 그곳으로 갔다. 집안에서는 마침 진수성찬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도둑놈들이었다. 짐승들은 그들을 내쫓기로 하고, 몸집 크기대로 서로의 등에 올라타고는 일제히 소리를 질러댔다. 음악대로 뭉친 것이니까 음악연주를 시작한 셈이다. 도둑들은 혼비백산 도망치고 말았다. 동물들은 남은 음식들을 실컷 먹고, 피곤한 나머지 등불을 끄고 곧 잠이 들었다.
한참 후에 도둑 하나가 상황을 살피러 왔다. 죽은 듯 고요한 집안 부엌으로 들어간 그는 등불을 켰다. 고양이의 눈이 숯불처럼 보여 불을 붙이려던 도둑의 얼굴을 고양이는 마구 할퀴었다. 그가 깜짝 놀라 도망치려하자 문 옆에 자고 있던 개가 발을 물었다. 마당을 지나려니까 당나귀가 두발로 찼다. 수탉도 선반 위에서 크게 울음소리를 냈다. 도둑은 두목에게 가서 이렇게 보고했다. “무서운 마술쟁이가 마구 할퀴고, 누군가 날카로운 칼로 내 발을 찔렀으며, 무서운 괴물이 쇠뭉치로 내려쳤습니다. 지붕 위에선 어떤 재판관이 ‘나쁜 놈 때려죽여라’ 하고 소리치더군요. 그저 간신히 도망쳐 나왔습니다.”
동물들은 무사히 브레멘에 도착하여 거기서 음악사로서 편안한 여생을 즐겼다.
2.
1980년 초봄. 스위스에서 유학 중이던 나는 북부독일 여행길에 올랐다.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초년기에 활동하던 예술가마을 보릅스베데를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그곳으로 가자면 이래저래 거쳐 가게 마련인 브레멘을 내가 서둘러 찾은 것은 도시가 지닌 동화적 분위기 때문이었다. 사진으로만 보던 청동조각 작품 <브레멘 음악사들>(1956년 게르하르트 마르크스 작)을 보고 싶었다. 네덜란드 풍의 황금빛 찬란함이 지배하는 시청광장 맞은편에는 칼 대왕 당시의 전설을 한 몸에 담고 있는 ‘영웅 롤랑’의 석주(1404년에 세워짐)가 호령하듯 서 있었지만, 내가 보기에는 더 큰 호소력을 지닌 것은 이 작은 동물 형상들이었다.
당시 나는 해발 700미터가 넘는 알프스의 산악도시에서 80미터 이하의 이 낮은 지역에 간 것이다. 시내에 들어서자 우선 크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인구 불과 4만의 산골에서 바라보던 조각하늘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드넓은 수평선 위의 하늘 때문이었다. 눈앞에 펼쳐지는 끝없는 벌과 늪지대 풍경. 항상 물이 고여 축축한 대지에는 신비의 아지랑이가 꿈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더욱 인상적이었던 것은 세상을 향해 활짝 열어 놓은 사람들의 마음. 얄미울 정도로 화장 잘한 스위스 도시에 비해서 세수도 안한, 수더분한 친구를 본 듯했다.
권력의 편이기를 거부한 그림 형제는 동화 <브레멘 음악사들>에서 선한 이웃을 잔뜩 부려만 먹다가 필요가 없으면 내버리는 인간들의 이기심에 일침을 가한다. 지난날 우리에게 IMF 한파가 밀어 닥쳤을 때, 갑자기 ‘쓸모없는 존재’로 내몰린 이들에게 적지 않은 힘과 용기를 주었던 이 이야기는 그래서 한결 생명력 있게 느껴진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은 독일 중부 헤센에서 수집, 정리된 이 이야기가 하필이면 왜 브레멘을 목적지로 삼았을까 하는 점이다. 그것은 도시가 적어도 ‘쓸모’를 되찾으려는 자에게 변함없는 희망이 되어 주었고, 또 내가 막연하나마 늘 생각해 온 브레멘의 인상과 일치하고 있다. 바다에 이르기 전의 마지막 시혜일까? 베저 강줄기에는 그 어떤 관대함이 관류하고 있었다. 그래서인가. 브레멘 거리에는 유난히도 악사들이 많이 보였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이 ‘니더’(낮은)작센 지역은 자연스레 문화의 한마당이 되었고, 긴 ‘메르헨 가도’의 한 몫을 점하고 있다. 참, 그러고 보니 이곳은 하노버를 중심으로 독일말의 표준어 지대가 아니던가.
인류가 사는 곳이면 어디나 이야기들이 뒤따르듯이, 동화가 없는 문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진짜 동화다운 이야기들은 추운 지방의 골방에서 자라나는 것 같다. 햇살 가득한 남방에서는 시와 노래가 번창했다면, 북방의 잿빛 하늘이 소설과 이야기를 키워 온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이런 맥락에서 북구 덴마크의 안데르센도, 브레멘도 생각할 수 있으리라.
베저 강 물결 따라 자라난 전설은 또 하나의 동화도시 하멜른을 탄생시켰다. ‘하멜른의 쥐 잡는 자’라는 전설은 도시의 존재가치를 드높인 발판. 1430-50년 뤼네부르크 필사본에 의하면, 1284년 한 피리 부는 사나이가 아마도 올뮈츠 대주교의 권유대로 130 명의 소년과 소녀들을 다른 땅으로 이주시키기 위하여 하멜른으로 이끌고 왔고, 그것이 방랑전설로 널리 유포되어, 모든 쥐들을 피리소리로 내쫓는 마법의 이야기로 발전되었다고 한다. 쥐는 인간과 친숙한 위치에 있으면서 혐오감을 주는 동물. 그래서 사악함이나 마법의 능력이 증명되는 대상으로 즐겨 쓰이곤 한다. 라인 강변 빙엔의 <생쥐탑>도 연상되지만, 전설의 진원지인 ‘뤼네부르크 황야’의 삭막함도 서정에 가담할 수 있으니 놀라울 따름이다.
3.
헤센 주는 생태환경이 좋고, 중세의 전통문화를 다른 어느 곳보다 잘 보존하고 있다. 시인 릴케는 일찍이 이 지방의 옛 시간들을 향해 마치 외진 곳에 쏟아지는 별빛 같은 눈길을 보내지 않았던가. 지역이 넓어 개방적인 라인-마인 지역과 프랑크푸르트에 비해, 바로 이웃 산간지역은 문화적 폐쇄공간이 되었다. 가장 밝은 곳 주변이 제일 어둡다는 표현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
헤센의 외딴 지역 정서를 대변하는 동화는 <헨젤과 그레텔>. 산과 골짜기, 고요한 숲지대, 기사의 성들이 배경이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신델레라 Cinderella>. 독일어로는 “Aschenputtel”이라고 하는데, 이 지방의 아궁이 재속을 파헤치고 뒤지는 부엌데기란 뜻이다.
유리구두가 등장하고 발이 꼭 맞는 사람에게 왕비가 되는 기회가 주어진다. 계모와 의부형제들의 학대에 시달리던 신데렐라는 죽은 어머니, 나무와 새들의 도움을 받아 신발의 주인이 된다.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는 원래 부드러운 가죽신이었다고 하는데, 발음이 비슷한 프랑스어의 ‘가죽 Vair’이 ‘유리 Verre’로 잘못 전달되는 바람에 생긴 착오였다던가. 참 위대한 창조적 착오가 아닐 수 없다. 유리 구두는 우리에게 더 많은 꿈을 안겨주고, 발에 맞지 않아 피를 흘리는 욕심꾸러기들의 찡그린 얼굴을 볼 수 있어서 기쁘다.
내가 이곳을 찾았던 것은 1979년 여름. 적막한 숲 언덕과 넘실대는 강물 위로 거대한 몸채를 기대고 있는 구름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비로소 수직 고저의 풍경 속에서 무슨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헤센의 바람은 파란빛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된 것도 바로 이때부터가 아니었던가. 여기에 동화와 세계를 끌어들이지 않는다면 자연에 대한 마땅한 경의가 되지 않으리라는 생각도 버릴 수 없고...
야콥(1785-1863)과 빌헬름 그림(1786-1859) 형제의 출생지 하나우는 목사였던 증조부 이후 온가족이 살아 온 삶의 터전이다. 두 사람의 탁월한 자연감각은 이미 이곳에서 싹텄고, 주변 계곡이 그의 감성을 키웠다. 나는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길에 여러 차례 이 지역을 스쳐 지나간 정도이지만, 멀리서 보는 도시의 전경은 동화의 고장다운 어떤 품위가 깃들어 있었다.
1791년 형제는 슈타이나우로 거처를 옮기면서 또 하나의 낙원을 발견하였다지만, 1815년 빌헬름이 라인 강 여행을 하던 중에 하나우를 찾으면서, 되살린 어린 시절은 꿈에 머물던 것들이 관념의 틀을 비집고 현실로 모습을 나타내게 한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또한 베저 강 지류에서 루르 지역으로 이어지는 인구 약 22만의 도시 카셀은 브레멘에서 다시 스위스로 향하던 나를 잠시라도 이곳을 들르지 않고는 못 배길 충동 속으로 몰아넣었다. 고작 한 두 시간 머물렀을까? 그림 형제 박물관이 있다는 것 이외에 유혹의 끈이 없었지만, 정작 그곳에는 가보지 못했다. 그러나 꿈과 같은 도시의 언덕길을 오르내리며 나는 그림형제와 내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고대 게르만의 역사와 어원, 영웅전설, 신화, 언어사 등 찬란한 업적에 이어 바로 이 때 보석과 같은 <어린이 가정 동화>1권(1812년), 2권(1814년), 주해서(1822년) 등을 생각하면서.......
4.
사람들은 흔히 다름슈타트와 하이델베르크 사이를 ‘산악 가도’라고 부른다. 바이에른 지방의 뷔르츠부르크에서 뮌헨 남쪽 알프스 기슭의 퓌센에 이르는 길은 ‘로맨틱 가도’라고 한다. 그러니 그림 형제가 태어난 헤센의 하나우로부터 베저 강 하구 북해로 빠지는 물길 언저리까지를 ‘메르헨 가도’라 부른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런 일이 아니겠는가.
‘메르헨’은 “불가능한 사건을 가능하거나 불가능한 조건 아래에서 단지 가능한 것으로 묘사하는 것”이라고 괴테는 말한 바 있고, 노발리스는 “어느 곳에서나 있을 수 도 있고, 어떤 곳에도 없을 수 있는 고향의 세계에 대한 꿈”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그것은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 아니 장난꾸러기, 난쟁이, 양복재단사, 방앗간 주인, 마부, 빵 굽는 사람 등 이른바 가난하고 천진스런 작은 인간들이 함께 노력하여 세운 공든 탑이다. 독일은 바로 이러한 시민들의 나라요 문화마당이 아니던가.
‘메르헨 가도’는 그러므로 평범한 경지를 무시하고 많은 것들을 허비한 사람들, 그리하여 지금까지의 인생을 건성 살아온 사람들, 그래서 보충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한다. 그런 사람들은 실제로 아니면 마음속으로라도 이 가도를 탐사해 봄직 하다. 동화는 인류 모두의 것인 만큼, 이 길도 독일인만이 아닌 온 세계인이 걸어야 할 꿈길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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