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의 꿈
솔뫼 조두환
오스트리아 빈에 머물던 때, 문호를 개방하기 시작한 동구에 들어설 기회가 생겼다. 여러 마을과 도시를 지나 오전 11시경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 멀리서 보이는 자태, 찬란한 과거의 위용이 그대로 눈앞에 우뚝 서 있다. 한 구석에는 무언가 안쓰러움과 어스레함이 깊이 드리워져 있고.......
우선 돈을 바꾸었다. 남아프리카에서 온 독일계 E는 20마르크만 바꾼다고 한다. 오늘 쓸 돈을 근검의 잣대로 정확하게 잰 것이다. 그보다 네 배를 바꾸겠다는 한국인 C와 대조적이다. 조금 덜 찾도록 내가 설득했다.
현란한 7월 첫날의 햇살이 거리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밝은 햇살만큼 그늘은 더욱 선명하다. 드넓은 도나우 강폭이 나의 좁은 가슴을 부끄럽게 한다. 저 멀리 독일의 도나우에슁겐에서 시작된 좁다란 물줄기가 이곳 하류에 이르러 이렇게 넓어지다니....... ‘푸른 다뉴브’가 상상의 나래를 접고 현실의 빛으로 달려와 흐른다. 더욱이 빠른 물살은 꿈이 깨진 듯한 허전함까지 흘려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좌우로 우람하게 솟아있는 ‘로열 팰리스’와 의회건물이 그런 아쉬움을 달래주고 있었다.
도시는 도나우 강을 중심으로 이쪽의 ‘부다’와 저쪽의 ‘페스트’를 합쳐 부다페스트라고 한다. 지리상으로 위와 아래 같은 인상을 주는 것은 ‘부다’ 쪽이 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쪽에 대부분의 중요한 건물들이 많다. 강물을 가르는 두 개의 다리가 아주 인상적이다. 눈앞에 보이는 여섯 개의 다리 중 엘리자베스 교와 체인교가 특히 눈길을 끈다. 강 가운데 있어서 뿐만 아니라 안전에 대해서는 추호의 의심이 가지 않을 정도로 튼튼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다리라는 물체는 당분간 한국 사람에게는 튿별한 인식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같은 사물일지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달라지는 건 당연하고 바람직한 일일 수도 있다. 성수대교 붕괴사건으로 큰 고통을 겪은 우리로서는 자연스레 머물게 되는 생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주관이 너무 강해도 문제이겠지만, 인간과의 관계를 상실한 사물, 그것은 객관과 과학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현대사회의 병이 아닐까. 동유럽의 유서깊은 이곳을 기능적으로 우람하게 서 있는 다리라면 너무나도 섭섭한 나믕이 아닌가 여겨진다. 무언가 마음이 실린 부다페스트의 모습이 그립다.
짦은 시간이지만 나와 부다페스트 사이에는 그래도 개인적인 감정이 소통되고 있었다. 차츰 무관심의 벽도 무너졌다. 폐쇄의 도시가 친숙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먼저 미술관으로 쓰이고 있는 ‘로열 팰리스’에 가 보았다. 웅장하면서도 다정한 인간미가 풍긴다. 무언가 커다란 알맹이가 들어 있을 것같은 품요로움이 느껴진다. 안으로 들어가 볼만한 시간이 없어서 안타까웠다. 입구 회랑에서 체험할 수 있는 예술적 정취를 철두철미하게 맛보았다. 일단 조그만 액자용 민속그림을 사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이국적 향취를 강하게 풍기는 한정판 사본이니 흔한 다수의 범위에서 벗어났다.
산악궤도열차를 탔다. 한 10분 걸렸을까. 거의 모두가 목제로 된 탓이기도 하지만 오랜 세월을 견디어 온 탓에 삐걱거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오히려 정겨움이 묻어나 좋았다. 나사가 느슨하게 풀려 있는 것, 그 자체가 숨구멍을 통하게 한다.
내다보이는 도시는 절경이다. 강변에 일구어 놓은 삶이 꿈처럼 피어나고 있었다. 서양의 도시는 한 결 같이 물을 중심으로 조성되어 있다. 우리 동양인, 특히 한국사람들은 되도록 산비탈 밑으로 올라가기에 바쁜데....... 하도 물난리에 시달려 왔으니까 어쩔 수 없었겠지만 우리에겐 물을 다스리려는 의지가 너무 일찍 쇠진되어 버린 것 같다.
아무튼 의사당 주위로 바둑판 같이 펼쳐진 도시가 아름답다. 신비롭다. 마침 찬란한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화려한 둥근 탑, 옆으로 보이는 교회당의 첨탑들이 흘러간 시대의 융성함을 입증시키고 있다. 앙증스런, 아니 무한한 비밀을 지닌 처녀의 치마폭 속 같다. ‘산도르 팰리스’에서 그 모습을 사진기에 담아보았다. 저 아래에서 무얼 더 잘 보려고 발돋움하며 안달을 떨던 것이 무색해진다. 위대한 사람 앞에서 소인배가 느끼는 그런 감정이리라. 하물며 신 앞에서 위축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참모습을 생각하게 된다.
한 구석에는 석조 조각품이 두 동강이가 나 쓰러져 있다. 문화재를 추스릴만한 여력이 없는 걸까. 아니 그걸 제대로 유지할 만큼 경제력이 뒤따르지 못하는 것도 이들의 현실이다. 로열 팰리스 앞뜰에서는 세 사람의 악사가 마침 라흐마니노프의 <푸른 다뉴브 강의 물결>을 연주하고 있다. 우리 귀에 너무나도 익숙한 멜로디, 그 애틋한 가락을 들으면서 우리는 청소년 시절부터 수많은 이국에 대한 그리움을 쌀아오지 않았던가. 살갗을 부드럽게 스치는 영혼의 바람이 불어온다.
눈 앞에는 ‘칼비니스트 교회’와 ‘상 안나 교회’가 묘한 대조를 이루고 서 있다. 아니 오히려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대화를 나누며 의연히 도시를 지키고 있었다. 그 위로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 있는 뭉게구름. 아, 신선의 조화가 이럴 수 있으리라는 생각과 말 이외에는 다른 표현이 있을 수 없으리라. 감격이 지나쳤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것은 인간의 작품일 수가 없다는 느낌은 여전하다.
밖에 나오니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에 걸 맞는 여인의 선정적인 옷차림이 눈부시다. 안의 엄숙함과 너무 대조적이다. 서방사회의 투어리즘이 그동안 돌아앉아 있던 부다페스트의 옷자락을 여지없이 벗기고 있었다. 자본주의의 물결이 도나우 강의 물살 이상 빠르게 흘러들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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