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댕이 일기
솔뫼 조두환
모처럼 초청받은 자리였다
밀려드는 졸음을 쫓아내며
거창한 행사순서들을 견디고 있는데
진행을 맡은 이가
오신 손님들을 소개한다며
이 사람 저 사람 헤집고 다니나 싶더니
같이 간 나만 쏙 빼놓고 간다
안개처럼 꺼져간 나의 정체성
이내 자리를 박차고 나올까도 생각했지만
밴댕이 속내 드러날까 두려워 망설이고 있는데
곧 만찬 대신 도시락을 나누어 주겠다나
그 덕에 조금 더 남아 있을 수 있었다
사람들 숲에 묻혀 건성 지낸 하루가
멋쩍고 피곤했지만
나 스스로조차 모르고 지낸 나를 새로 만나니
모처럼 기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