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벤하우젠 수도원 가는 길
조두환
너른 벌 풀빛 지붕에 손 내민 하늘이
뭉게구름의 힘 빌려 그려놓은
튀빙겐 쇤부흐 자연공원 숲길
세상의 소리 모두 다 빨아들였나
바람 한 점 다닐 자리 없는 적막강산
새들과 나무들의 속삭임뿐이네
푸른 오솔길 한 구석에는
알뜰한 책꽂이와 앉을자리가 있고
책은 읽다가 가져가도 좋고
다른 걸 대신 갖다 놓아도 좋다는
외할머니 손바닥같은 안내판 옆으로
이름 모를 연보랏빛 꽃들이
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네
아랫마을로 내려가는 길목
더 깊은 정적이 샘솟는 자리에
마음을 닦고 영혼을 씻어 줄
베벤하우젠 수도원이 앉아있는데
삶과 죽음이 만나는 십자가 동산 위로
천국은 이런 모습이란 계시인가
하늘 높이 쌍무지개가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