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속 시간

밴댕이 일기

조두환 2025. 2. 8. 15:41

모처럼 초청받은 자리였다

밀려드는 졸음을 쫓아내며

거창한 행사순서들을 견디고 있는데

진행을 맡은 이가

오신 손님들을 소개한다며

이 사람 저 사람 헤집고 다니나 싶더니

같이 간 나만 쑥 빼놓고 간다

안개처럼 꺼져간 나의 정체성에

이내 자리를 박차고 나올까도 생각했지만

밴댕이 속내 드러날까 두려워 망설이고 있는데

곧 만찬 대신 도시락을 나누어 주겠다나

그 덕에 조금 더 남아 있을 수 있었다

사람들 숲에 묻혀 건성 지낸 하루가

멋쩍고 피곤했지만

나 스스로조차 모르고 지낸 나를 새로 만나니

모초럼 기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