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눈 내리는 날의 이야기

조두환 2022. 5. 14. 17:44

직장에서 물러난지 얼마 안 되는

병아리 백수들이 지난번 헤어지면서

어렴풋이 해둔 약속이

아침 시간을 채근한다

 

간밤 겨울 꿈이 영근 걸까

뻥 터진 하늘 아래

온 누리가 눈더미에 묻혔다

모두가 거북이 걸음

이래서 갈 수 있겠나 망설이다가

큰맘 먹고 길을 나섰다

 

비좁은 지하철 틈새에

몸을 끼워 넣으면서

일하러 갈 일이 없는 내가

가슴졸이는 직장인의 자리 하나

빼앗은 건 아닌지 자책하며

역 대합실 약속장소에 나갔다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마음 속으론 

만남을 거의 포기해 놓은 상태라

전화도 신통하게 불통이다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가져 온 커피를 드는둥 마는둥 하다가

집으로 돌아 왔다

 

한참 후 그냥 걸어 본 전화는

그제야 연결되었는데

안 오기를 잘했다는 서로의 맞짱구

그래, 세상일 안될 거라면

이렇게 안 되는 것도 좋구나 생각하며

창밖을 내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