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의 발걸음으로
브뤼헤*성당의 종탑아래
조두환
2022. 4. 4. 14:41
온 세상이 물천지
하늘도 물에 잠기어
운하로 통한다
유유히 흐르는 물결 위에
되비치는 초라한 나의 모습
피붙이 가족을 멀리 떠나보내야 하는
무거운 이별의 장소에서
다가올 안갯속 시간들을 뒤적이면서
눈물없는 울음을 운다
삼백예순여섯 계단의 끝자락에
마흔 일곱 개 종을 매단
브뤼헤 성당의 종탑이 울 때
감아드는 숫자의 마력을
원시종교의 주문처럼 외워가며
나는 그래도 놓을 수 없는
희망의 끈을 바싹 조여 본다.
* Brugge. 벨기에 북서부 서 플랑드르 주도. 북유럽의 베네치아라 불리는 중세도시.